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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안내]창경궁 상세 내용
[정보안내]창경궁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05-27 조회수 111

창경궁은 1483(성종 14) 조선의 세 번째 궁궐로 지어졌으며,

창덕궁를 보충하기 위한 궁궐로

원래 창경궁 터에는 1418년 태종을 위해 창덕궁 동편에 창건한 궁이었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하나의 궁궐로 동궐이라 불렸다.

비밀의 숲, 후원의 정원도 당연히 같은 정원이었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족한 생활공간을 보충하였다.

성종 때에는 3명의 대비(정희왕후, 안순왕후, 소혜왕후)를 위해 사용하였고,

왕과 왕비, 후궁, 공주, 궁인들의 처소였다.

 

궁궐은 남향이 원칙이었는데, 창경궁은 주 건물이 동쪽으로 배치되었다.

임진왜란 때 모든 궁궐이 불탔고, 1616년에 재건, 많은 건물들은 이때 다시 세웠다.

 

창경궁 매표소를 지나면 첫 번째로 홍화문을 만나게 된다.

홍화문은 왕이 직접 백성을 만난 장소로

영조는 균역법에 대한 찬반 여부를 백성들에게 물었다 한다.

또한 정조는 효심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창경궁에는 여러 전각들이 있는데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임진왜란 후 광해군이 창경궁을 중건할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궁궐의 정전 가운데에서는 가장 오래되었다.

왕이 일상 업무를 보았던 곳으로,

창경궁이 전체적으로 동향한 것과 달리

남향인 문정전, 독서하거나 국사를 논하던 숭문당이 있다.

 

홍화문에서 명정전을 가려면 옥천교가 나온다,

옥천교는 창경궁의 금천이다.

모든 궁월 마당에는 시냇물 길이 있는데

이것은 법전이 있는 궁궐의 안쪽과 외부의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며,

궁궐 뒤의 산과 짝을 이루어 좋은 운을 불러들이는 길지의 상징으로

궁궐 앞쪽에 일부러 만든 물길이다.

 

왕비의 침전인 통명전은 내전의 중심 공간으로

이곳에서 희빈 장씨가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묻어 숙종 비 인현왕후를 저주하였다가

사약을 받은 이야기로 유명한 곳이다.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태어난 곳이며, 혜경궁 홍씨가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수빈 박씨가 순조를 낳았고, 순조의 탄생, 돌잔치, 관례, 책례 등이 이루어진 집복헌이 있다

활을 쏘고 과거를 보던 춘당대,

그 옆에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왕이 직접 농사를 지었던

내농포가 있는 춘당지는 서울 도심에 흔치 않은 연못으로

주변의 숲도 울창하여 많은 새들의 보금자리다.

 

창경궁 안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이며, 이색적인 대온실이 있다.

1909년에 건축되었으며, 건축의 뼈대는 목재와 철재로 이루어져 있고,

외관은 온통 유리로 되어 있다.

현대에 와서 대온실은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야생화, 자생식물 등을 심어

궐내 자연 학습장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그 자체가 역사적 가치와 건축적 의미를 지닌 근대문화유산이다.

 

1907년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일제가 창경궁을 훼손하며,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고 권위를 격하시켜 창경원으로 만들었다가

1983, 동물원을 이전하고 훼손된 부분들을 복원하였다.

창경궁의 전각들을 관람하고 뒤편 언덕으로 창덕궁의 후원 가는 길이 있다.

궁궐 복원 사업으로 많은 전각들이 세워지고 궁궐의 본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궁궐의 옛길을 걸으며, 구중궁궐, 옛사람들의 삶을 느껴 본다.

주소는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185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50+기자단 양정숙 기자(tomymelon@naver.com)

 

 

창경궁.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