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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수기]광릉 국립수목원 상세 내용
[여행수기]광릉 국립수목원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05-27 조회수 111

싱그러운 오월.

계절의 여왕답게 이제 연초록의 세상이다.

차창 밖은 노란 미나리아재비 꽃, 애기똥풀, 밭에는 하얀 감자꽃이 피었다.

대전에서 일곱시 출발, 나들목에서 약간 지체했지만, 열 한시 경 남양주에 있는 광릉에 도착했다.

광릉숲으로 버스가 들어서자마자 상쾌한 공기가 느껴졌다.

 

광릉은 조선 7대 세조대왕과 정희왕후의 능이다.

세조는 1453(단종1)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으며

형식상 단종의 양위를 받아 왕이 되었다.

재위 13년 동안 신하들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직전법 시행을 통한 토지제도 개혁, 지방의 군사조직을 강화하여 방어 체계를 굳건히 하였다.

경국대전 편찬 등 백성을 위한 정책을 폈으나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왕으로 남았다.

 

1468년 세조가 승하하자 광릉이 조성되었다.

광릉은 조선 최초로 같은 능역 내의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을 조성한 동원이강(同原異岡) 형식의 능이다.

V자 모양으로 서쪽은 세조, 동쪽은 정희왕후, 산 중턱 높이 흙을 돋아 능을 조성했다.

 

광릉 숲 안에 봉선사가 있다.

동서남북 정중앙에, 명산으로 이름 높은 운악산 그 기슭에

서기 969년 고려 광종 20년에 법인 국사가 창건하였다.

1469년 세조의 위업을 기리고 능을 보호하기 위해 중창하고, 봉선사라 하였다.

1551년 문정왕후가 불교 중흥 정책으로 봉선사를 교종의 우두머리 사찰로 삼았으며,

봉선사에서 승과고시가 열렸다 한다.

봉선사 앞마당에 돌로 된 당간지주가 있으며 그곳에 깃발을 꽂고 시험문제가 걸렸다고 한다.

시험장소와는 좀 거리가 있어, 어떻게 글자를 읽을 수 있었을까 의아해했더니,

커다란 글씨 딱 한 자였다고 한다.

 

1469년 세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한 동종은

조선시대 조각사를 대표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신라종과 다르게 종두가 특이하다.

종신에는 독특한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산스크리트어라고 한다.

그 시대 스님들은 경전을 읽을 때 원문을 읽었을까?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아쉽게도 한국 전쟁 때 불타 녹아내려 새로 아름답게 만들었지만,

종소리만은 복원할 수 없었다고 한다.

 

봉선사 사찰 비빔밥을 체험하였다.

건강식이다.

달걀 없는 비빔밥을 맛있게 먹었다.

봉선사 신도분들이 운영한다고 한다.

물론 식사 후에는 각자 자기 밥그릇 설거지 하기다.

 

점심 식사 후 본격적인 광릉수목원을 탐사했다.

광릉숲은 세조가 살아생전부터 보호되기 시작하여

오백오십여 년 동안 훼손되지 않아 식물 최상층 극상림을 이루며,

전 세계적으로도 온대 북부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온대 활엽수림이며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숲이다.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입구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의미 있는 기념식수 소나무들이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나무들이 있는데

하트 모양잎을 가진 상상 속의 옥토끼와 함께 하는 계수나무,

몽골 사막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서 심는다는 비술나무,

별로 눈에 띠지 않았지만 해설사가 소개해 준 복자기 나무,

복자기 나무는 가을에는 단풍이 광릉 숲에서 가장 아름답고,

겨울에 눈이 가지에 달리거나 물방울이나 서리가 달리면, 신비롭단다.

그 말을 들으니 가을에도 다시오고, 겨울에도 또 한 번 오고 싶다.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자 광릉숲을 다 보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과,

계속 머물고 싶은 마음을 나무에 달아 놓으며

근래에 제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오늘 아름다운 광릉숲을 떠났다.

 

50+기자단 양정숙 기자(tomymel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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